![]() | 폭력과 상스러움 ![]() 진중권 지음/푸른숲 |
신문이나 잡지 지면에 연재되던 글들을 모아서 출판된 책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일단 시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 소설이라면 모를까 - 출판되기까지 시간차 만큼 글의 생명력이 떨어진다.
"그래.. 그 시절에는 이런 문제가 있었지." 라고 되뇌이는 것은 아무래도 맥이 빠지게 마련일 수 밖에.
그래도 용도는 분명히 있는 것이,
작자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위한 탐색용으로나, 그에 대해 더 이상 읽을 것이 없을 때 잠시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 쉬어가는 코너가 될 수 있다.
이 책 역시 탐색용 및 쉬어가는 코너 삼아 가볍게 골라들었으나, 그다지 가볍지 않다.
6년 전에 출판된 책이니 글은 훨씬 더 전에 발표된 것임이 분명한데, 글 꼭지마다 살아 숨쉬는 이 생동감은 뭔가.
우리 사회의 변화속도가 빠르다고들 하지만 - 문화, 특히 상품이나 유행을 제외하고 - 기본 가치에 대한 진보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안타깝게도 6년 전의 문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있어온 문제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 아마도 내 살아 생전에는? - 계속 실재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특유의 재기 발랄한 글재주를 감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 뒤의 폭넓은 사상적 배경과 지식(독서량)에 감탄하게 된다.
서너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무식과 굳어버린 머리 를 탓할 밖에.. 생각하고 또 공부해야 할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부르주아'를 상위 부유층 20%로 '프롤레타리아'를 나머지 80%로 이해한다면, <공산당 선언>의 문장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옳다." 브라보. "복음서보다 젊은 세대에게 읽히기 훨씬 좋다." 브라보. ... 이 시뻘건 색깔의 글, 어디에 발표된 건 줄 알아? 독일의 꼴보수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실렸던 거래.
'자유=민주'라 생각하나 실은 양자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다. '자유'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을 함축한다. ... '민주'는 본질적으로 평등의 이념이다.
공자님 팔아 남에게 규율을 집어넣으려고 애쓰시는 분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규율이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규율'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규듈이 필요한 사람들은 '배 째라'며 막가는 소위 보수주의자들이다. ... 도덕이 그렇게 좋으면 자기만 지키면 될 일이지, 왜 자기 도덕을 남에게 강요하는 걸까?
"나는 당신이 여성을 사랑하는 데 반대한다" 어떤가? 우습지 않은가? 도대체 내가 여성을 사랑하는데, 왜 남들이 주제넘게 거기에 찬반투표를 하고 않았는가. 자, 그럼 마지막으로 이 문장은 어떤가.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남이 동성을 사랑하든, 이성을 사랑하든 내가 거기에 찬성하거나 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것들은 '찬성'이나 '반대'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사용될 수 있는 맥락이 아니다.
한마디로 레드 콤플렉스는 빨갱이에 대한 공포감이 아니다. 외려 빨갱이 잡는 극성스런 반공 투사들에 대한 공포에 가깝다. 말하자면 언제라도 빨갱이로 몰려 죽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한국의 정치는 본질적으로 공포 정치, 대중의 본능적 공포를 자극하는 협박의 정치다. 그리고 이 공포 정치에 대중은 기꺼이 참여한다. 왜? "직접적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공격자와 동일시 하는 것은 생존전략의 일환이다."(홀거 하이데)
지배를 하는 국가 권력은 자기 재생산에만 관심이 있을 분 학생 개개인의 교양 수준에 별 관심이 없는 반면, 지배를 받는 개개의 가정들은 권력의 위계 질서 속에서 자기 자녀가 교양이 있는 인격자가 되어 낙오하기보다는 교양이 없어도 출세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와 가정의 묘한 공모가 이루어진다.
역사란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위해 과거의 기억을 조직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