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저자의 글빨과 말빨을 고려한다면, 약간 밀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음.. 어딘가 연재한 컬럼을 모아서 책으로 낸 느낌? 각각의 글꼭지는 쉽고 짧아서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책으로서의 연결성은 부족해 보인다.
진중권의 이름을 지우고 읽는다면 가볍게 읽을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덩가' 정도로 보면 되겠다. (덩가: 예전 딴지일보의 평점방식. '보던가 말던가'의 줄임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민족성' 혹은 '국민성'의 함정을 피해가기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간혹 과도한 객관화와 일반화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보이고.
하지만, 다음과 같은 부분은 전폭적인 동감을 표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군.
사원들에게 극기 훈련이나 산악 행군을 시키는 것은 우리 기업문화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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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 생산력이 되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은 자신의 미래를 군대 훈련소에서 찾고 있다. 모자라는 상상력을 사디즘으로 보충하려는 변태들이 너무 많다.
- 간혹 뉴스에서 어린 자식을 해병대 체험에 보내는 변태 부모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애들이 무슨 죄냐. 가서 얼마나 망가져서 올지..
한국에서는 위계적 사고가 언어 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 집에서 3살난 동생이 5살난 오빠의 이름을 부르면, 어김없이 지적이 날아든다. "OO가 뭐니. OO오빠 라고 해야지." 말을 배우자마자 위계적 사고의 각인이 이뤄지는 셈이다.
아무에게나 이름을 부르거나 너(You) - 부모 자식간에도 - 라 할 수 있었다면, 훨씬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을 텐데..
한국인의 무의식에 깔린 더 큰 공포는 다른 데서 온다. 사회적 안전망의 결여, 지나친 경쟁의 강조, 점증하는 고용의 불안정성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가진 공포의 주된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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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느냐, 더 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는 곳에서,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새 영역을 개척하기보다는, 이미 안전한 것으로 입증된 낡은 습관을 고집하게 된다.
사회가 정보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력의 상당수는 공장에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렇게 사무노동 종사자 수가 대폭 늘어나면, 사무직 노동자들이 과거에 누렸던 특권적 지위도 당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화이트칼라의 블루칼라화가 진행된다.
- 그렇군. 나도 어서 블루칼라의 자세를 갖춰야.. 근데 그게 어떤 자세?








